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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민주주의를 일궈 낸 DJ의 영원한 동지이자, 여성운동의 대모 이희호 여사가 걸어오신 길.

여성운동가로 민주화 투사로, 평화 전도사로 신산한 삶을 살아오신 고 이희호 여사님

 

 

 

19229월 서울에서 62녀의 넷째이자 맏딸로 태어남

-세브란스의학교를 나와 의사가 된 아버지를 따라 일곱살 무렵 충남 서산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서산공립보통학교 졸업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이화여고전신) 졸업

 

1942년 이화여자전문학교(이화여대 전신) 문과에 입학

 

-고인은 일제 강점 말기의 혼란 속에서 2년 만에 강제로 졸업

 

1946년 서울대 사범대에 입학

 

1954년부터 4년 동안 미국 테네시주 램버스대학과 스캐릿대학에서 사회학 석사과정

-차별받는 흑인공동체 문제에 관한 현장연구로 석사학위

 

1958년 겨울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연합회 총무

 

1962년 야당 정치인 김대중과의 결혼

 

 

 

 

 

서울대 학생 시절 이희호 여사님 

 

 

유학 시절 이희호 여사님

 

 

 

1958년 겨울 대한여자기독교청년회(YWCA)연합회 총무 시절  

 

 

 

1962년 김대중 대통령과 결혼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했을 때 유세장에서 음료를 건네고 있는 이희호 이사장

 

 

 

 

 

 

 

76년 3.1 민주구국선언주도 혐의로 구속된 김대중 대통령 및 민주 열사 석방 시위 모습  

 

 

 

 

1981123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직후 면회에서 이 여사는 세 아들과 함께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 때를 돌아보며 "아내가 그렇게 그렇게 존경스러울 수 없었다. 가족의 믿음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나는 20년을 넘게 지속된 고난을 결코 이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중심에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이 수감됐던 2년 동안 모두 649통의 편지를 썼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김대중 대통령 서거 

 

 

 

 

 

 

 

 

 

 

 

 

 

 

 

 

 

 

노무현 대통령 서거 주기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봉하로 내려오시는 이희호 여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