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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블로그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읽고 난 후

국민학교 오학년 때 한 친구가

학력상 한 장도 못 받은 애하고는 친구 하기 거시기하다고 해서
나는 전교 일등치는 애한테 달려가
시팔 나 공부해야겠다고, 가르쳐달라 했더니
무슨 요술처럼 2개월 만에 나를 반 오등 정도로 만들어놓고
내리 학력상을 일곱장까지 받게 했다
중학교 입시 시험에서 나는 520명 중 29등으로 입학한 사실에 충격을 먹고 다시 그 친구에게 달려가
나는 돌대가리 아닌가 싶다고
내 학습지능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고 집중 질문하여
첫 시험에서 전교 8등까지 올랐다
떨어져봤자 전교 30등 이내인 성적에 나는 그저 담담했다

사회는 경수에게 넌 무슨 대학 나왔냐고
너의 핵심 이력은 뭐냐고 묻는다
중 2때 담배를 몰래 배웠지만 난 헤르만 해세의 데미안을 중 1때 읽었고, 나상만의 혼자뜨든 달을 고 1때 읽었으며, 스무살 때는 이외수의 훈장과 벽오금학도를 만나 자폐아로 뒤늦게 자라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와 이현갑의 조직신학을 염탐하며 찬란한 낭만주의의 함정으로 깊숙히 빠져들어갔다.
당신은 누구냐는 물음에 데카르트의 코키토를 들이데기도 하였으나 사람들은 가히 또라이 취급을 했고
서정주의 시를 사랑한다는 말에 친일 좌표를 들이댔으며
박세길 한국사를 읽으며 받은 충격에 그 시간에 토플이나 좀 치라고 욕 먹었다
시대는 늘 한줄로 나를 정리해버렸고
나는 작아졌으며, 나는 그들 좌표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참으로 미천한 자가 되어버렸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했다는 조금 쉬어보라는 안위의 책이 아니다.
당신이 들이대는 잣대는 대체 무슨 권한이었는지
고귀한 각 생마다 그리 살고 싶어서 살아온 생이 아님에도불구하고
고작 일백년도 못사는 종자들의 개념 없는 훈수타령에 귀기울이지 말고
이 사회나부랭이들의 좌표를 버리고 가장 당신에게 추억진, 가치있는 삶으로 돌아가보자는 아우성이다.

하완 작가의 책이 진정성 있게 오는 것은
바닥칠대로 친 인생이
가난한 청춘의 꿈을 위한 막연한 위로가 아님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시발 정말 잦같은 좌표를 너무 찍어댄다
모든 성공 기준에 부합되지 못한 자들을
노력이 부족한 인간이거나 개념 없는 인간들로 치부해 버린다
그들 삶의 궤적 하나하나 들여다 볼 때
어느 하나 아름답고 멋진 인생이 없다 말할 수 있는가

실패와 성공의 기준이 무엇이냐고 하완은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된 방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서기 2500년 우리 삶의 역사는
후손이 뭐라 기록할망정 아름다운 것이다
지들이 내 인생을 살아봤나
십억 백억 부자라도 니들 삶은 니들이 안고 가야 하는 것이라고
하완 작가는 말하는 것이고
다만 세상의 기준에 당신의 가치를 밑기지 말라는
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아ㅡ 쓰고나니 아리다
나도 모르겠지만
잘은 모르겠지만
당신들 술자리에서 한줄로 남으려고
버텨온 생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왜 우리는 이토록 자조적인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시대에
살고 있는 건가요

 

술 먹고 글 쓰면 다음날 이불킥인데